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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한국사

조선 세조의 체제 정비

by 부이쌤91 2020.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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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습코치 부이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선 세조의 체제 정비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이 조선의 체제를 갖추고 정비를 하였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조선 세조가 어떤 체제 정비를 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세조

조선 세조는 제7대 국왕으로 세종과 소현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나 수양대군이 되었습니다. 형 문종이 죽고 조카인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계육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죽이고,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즉위하였습니다.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 조카인 단종을 성왕에서 폐위, 살해하였다.

 

■6조 직계제

6조 직계제는 조선 태종과 세조 시기에 존재했던 정치체제로, 당시 극도로 강력해진 왕권을 상징하는 제도입니다. 6조 직계제는 기존 의정부 서사제와는 달리 실무기관인 6조의 판서들이 국왕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의정부 서사제에서는 의정부 3정승을 통해서 왕에게 모든 보고가 올라가고 왕 또한 정책 결정 사항을 의정부에 우선 재가하여야 하므로 정승 및 신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지만, 6조 직계제에서는 왕에게 그 정책에 대한 보고가 바로 올라가고 실무기관에게 직접 왕명이 내려지므로, 정승은 신권이 떨어져 왕권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세조 시기에는 도승지가 기존 삼정승의 위세를 견제하여 정치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했는데요. 이후 6조 직계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국가 권력 일부 비대중성을 막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데 이바지 했습니다.

 

■집현전 폐지

세조는 집현전을 폐지하였는데, 왜 폐지하였을까요? 집현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집현전은 고려 말 초전 초의 학문 연구 및 국왕의 자문 기관입니다. 집현전은 학자양성과 학문연구 외에도 가장 중요한 직무로 경연과 서연이 있습니다. 세종은 학사들의 연구에 편의를 주기 위하여 전적을 구입하거나 인쇄하여 집현전에 보관시키는 한편, 재주 있는 소장 학자에게는 사가독서의 특전을 배풀었습니다. 그 결과 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집현전은 폐지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뺏은 계유정난으로 집현전에 위기가 옵니다. 집현전에 소속된 인물로, 정인지,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개, 성상문, 하위지, 최항 등 당대의 천재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세조 즉위 후, 단종 복위 운동을 한 사육신을 비롯한 반대파 인물이 집현전에서 많이 나왔으므로, 집현전을 파하고 경연을 정지시키면서 집현전에 소장한 책을 예문관에서 관장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신들이 벼슬에만 욕심을 내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폐단이 생기는데요. 3품 이하 문신으로 젊은 사람을 위주로 예문관에서 관직을 겸임시켜 연구하게 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조에서 사관 선임 규정을 강화하고, 경연, 집현전, 보문각 등은 직함이 없어지고 혁파하기를 청하여 윤허하였습니다. 이로써 집현전은 완전히 폐지되었는데, 훗날 성종 때 홍문관으로 계승됩니다.

 

■경연과 서연 폐지

앞서 경연과 서연은 집현전의 직무라고 알려드렸는데, 경연은 전한 선체가 유학자들에게 유학 경전을 강의하게 한 것에서 유래하여 송 태종 때 경연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원나라 이후 형식적인 행사로 그친 반면에 한국의 고려, 조선에서는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중요한 학술 행사이자 정치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경연은 유교 학문, 교육의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있습니다. 경연의 본래 목적은 학문, 교육의 기능으로 군주와 신하들이 함께 유교 경전을 연구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기초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각종 유학 서적의 편찬 및 보급도 병행되었습니다.

 

유교의 정치적 기능은 본래 부수적이었으나, 점점 경연 자체의 목적이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권과 왕권의 조화입니다. 경연은 그 특성상 대부분이 신하가 군주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군주의 실책이나 이후의 정책 개혁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습니다. 군주로서는 경연 자체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므로 이 비판을 가급적 수용해야 했고, 이를 통해 왕권을 제한하고 신권을 유지하는 견제 효과로 일어났습니다.

 

서연은 왕이 될 세자를 교육하는 것인데 주체만 다르지, 유교 학문, 교육의 기능과 정치적 목적은 같습니다.

 

■직전법 실시

직전법이란 세조 때 실시된 토지제도를 말합니다. 직전법을 실시하기 전에 과전은 경기도 내의 토지에 한하여 지급하였기 때문에 관리 수의 증가와 과전의 세습, 토지의 한정 등으로 인하여 양반관료층 내부에서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토지 소유권자인 전객의 수조권자의 전주에 대한 항쟁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요.

 

이에 현직, 전직 관료를 막론하고 지급하던 사전을 폐지하고 직전이라는 명목으로 현직에 있는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분급하였습니다. 이때 전직관료만 토지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관료의 과부나 자녀 등 유가족에게 지급하던 수신전의 명목도 폐지하였습니다.

 

직전법의 실시는 관리들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재정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실시된 것일 뿐만 아니라, 세조의 집권을 시인하고 그 아래에서 관리로써 봉사하는 사람에게만 생활의 기반을 보장해주는 정치적인 의미도 가졌습니다. 

 

하지만 직전법의 실시로 퇴직 혹은 사망한 뒤에 경제적 보장이 없어진 관료들이 재직 중에 전객에게서 전조 및 볏짚을 규정 이상으로 징수하는 등 가혹한 수탈이 자행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 금지를 하였지만 관리들의 수탈이 계속되어 성종부터 점차 토지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전개되었습니다.

 

■경국대전 편찬 시작

경국대전은 세조가 즉위하자마자 당시까지의 모든 법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후대에 길이 전할 법전을 만들기 위해 육전상정소를 설치하고 최항, 김국광, 한계희, 노사신, 강희명, 임원준 등에게 명하여 편찬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경국대전의 완성을 보지 못한채 죽고, 성종이 이어 받아 완성하였습니다. 경국대전은 성종 때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조선 세조의 체제 정비라는 주제로 세조가 누구인지, 그의 정책인 6조 직계제 실시, 집현전 폐지, 경연과 서연 폐지, 직전법 실시, 경국대전 편찬까지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시간에도 유익하고 알찬 학습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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