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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사회탐구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by 부이쌤91 202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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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습코치 부이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사회탐구영역 세계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모두 지금의 그리스 역사입니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더불어 많이 아는 내용으로 봅니다. 아테네의 민주 정치 발전에 대해서는 기회가 될 때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의 역사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지금의 그리스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는 크게 선사시대, 고대시대, 중세시대, 근대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들의 변천이 있었습니다. 선사시대의 미노아 문명, 미케네 문명, 암흑시대를 거쳐 고대에 이르렀습니다.

 

 

고대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가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헬레니즘 제국으로 통일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이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니케아, 라틴, 이피로스, 트라페준타의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제1공화국이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비텔스바흐 왕조, 글뤽스부르크 왕조, 제2공화국을 거쳐 그리스 왕국, 그리스국이 되었으며, 현대에는 그리스 왕국,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의 제3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아테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국가입니다. 아테네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철학의 도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이자 유럽 문명의 요람입니다. 아테네에서 절정을 이룬 그리스 문명은 이후 로마와 중세 유럽, 근현대 유럽으로 이어지는데요. 심지어 계몽주의자들도 그리스의 유산을 망각했다고 비판하던 중세인들도 아테네의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앞에서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라고 하였는데요. 도시국가를 폴리스라고 하는데, 산지가 많고 평야가 적어 통일 국가 형성이 곤란함이 이유가 됩니다. 폴리스에는 종교적 군사적 거점, 신전이 건축되어 있는 아크로폴리스, 집회와 상거래의 장소이며, 광장을 뜻하는 아고라 등 국가 기능을 하는 시설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아테네에 있는 명소로는 파르테논 신전,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플라카 지구, 국립 고고학 박물관, 비잔티움 그리스도교 박물관, 리카비토스 언덕, 제우스 신전, 산타그마 광장, 오모니아 광장, 새벽시장, 모나스티라키, 수니어의 포세이돈 신전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 남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로 유명한데, 고대 스파르타 특유의 군인 양성방법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며, 현대에도 자비심 없는 비인간적 단련 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스파르타 교육 말고도, 시민의 정치참여와 안정성을 적절하게 타협시킨 혼합정 시스템으로도 유명합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던 스파르타는 이웃 폴리스 메세니아와 라코니아를 정복하고 시민을 노예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제2계층과 제3계층들이 대규모로 반란을 일으키는 사회혼란이 벌어졌고, 이 혼란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사회 체계인 라쿠르고스 체계가 성립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가 독특한 삼권분립 제도가 성립된 것은 물론, 사치가 금지되고, 공동식사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교육제도 또한 정비되어 흔히 알려진 스파르타식 교육제도로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군사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1년부터 기원전 449년까지 페르시아와 아테네 및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뭉친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벌인 전쟁으로 아테네의 급성장을 일궈낸 전쟁이자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전쟁입니다. 대략 기원전 490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는 페르시아의 공격과 그리스 연합의 방어가 이루어졌고, 기원전 479년부터 기원전 449년까지 그리스의 공격과 페르시아의 수비가 이루어졌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아오니아라는 소아시아 서부 일대의 그리스 식민지 도시국가가 반란에 아테네가 개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데, 아테네에게 패배하고 라테 섬에서 주요 섬 국가를 매수한 페르시아에게 간단히 진압됩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마찰을 빚는 과정에서 아테네의 페르시아에 대한 단순 동맹과 복종의 문제로, 페르시아 사이에 이견이 생겨 전쟁을 발발시켰습니다.

 

페르시아의 1차 그리스 원정에서는 페르시아가 마라톤 평원에 상륙하는데, 아테네와 스파르타 동맹국의 밀티아데스에게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2차 그리스 원정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중심의 델로스 동맹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철수하게 되는데, 3차 그리스 원정에서는 페르시아가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여 그리스 본토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되어 강력한 해살 국가로 발전하는 등 번영하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국가들이 맞붙은 전쟁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는데, 전기는 아르키다모스 전쟁, 중기는 시켈리아 원정, 후기는 데켈레이아 전쟁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쟁에 휘말렸고, 그리스 본토뿐 아니라 마케도니아, 펠레스폰토스, 이오니아, 시칠리아 등 넓은 영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델로스동맹을 지배하는 아테네가 횡포를 부려 제시의 자치를 범하고 위협하였으며,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번영을 시기하고 두려워하였는데요. 직접적으로 케르키라와 코린토스의 싸움에 아테네가 끼어들었습니다. 케르키라와 코린토스의 싸움에 아테네가 케르키라의 편을 들게 되어 아테네에 불만을 품고 있던 코린토스, 메가라 등은 펠로폰네소스 동맹회의를 결고 스파르타를 부추겼습니다.

 

제1기 전쟁이 다모스전쟁에서는 그리스의 장군 페리클레스가 농성전술을 택하여 최강의 육군을 자랑하는 스파르타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음으로 불필요한 소모를 피하였습니다. 해군을 습격하여 승리를 획득하려고 하였으나, 아테네에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유행하여 페리클레스도 죽게됩니다. 아테네의 지도자 클레온에 의해 니키아스의 화약이 체결되어 휴전을 하게되었습니다.

 

제2기 휴전기간중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직접적인 전쟁은 없었지만 서로가 세력 범위의 유지 확대를 꾀한 냉전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가 시칠리아 원정을 시도하는 것 스파르타가 간섭하게된 것인데, 아테네가 시칠리아 원정에서 패배할 때,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데켈레아를 점령하였습니다. 기원전 405년 아테네는 아이고스포타미해전에서 패배하고, 델로스 동맹들이 점차 아테네로부터 이탈하여 기원전 404년에 스파르타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주제로 그리스의 역사,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어떤 도시국가였는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무엇이고, 전개와 결과는 어땠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워낙 방대한 이야기다 보니 줄이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최대한 핵심만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학습코치 부이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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