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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사회탐구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

by 부이쌤91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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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습코치 부이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사회탐구영역 세계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2020년 6월 모의고사 9번 문항을 토대로 재구성하였으며, 메로베우스 왕조의 클로비스와 카롤루스 마르텔 시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시문

9번 문항에서는 (가) 왕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라고 출제되었습니다. 제시문에 쓰여진 신문 기사를 통해 (가) 왕조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그 시기에 있었던 사실을 고르면 되겠습니다.

 

 

세계사 신문 <특집 기획> 클로비스,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다. (가)의 클로비스가 마침내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클로비스는 개종을 통해 로마 주민과 긴밀히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닦은 셈이다. 앞으로 로마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융합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 된다.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클로비스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를 개창한 왕으로, 로마 문화와 자신의 게르만 문화와 융합한 업적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메로베우스 왕조의 클로비스와 카롤루스 마르텔 때의 시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프랑크 왕국과 클로비스 1세

프랑크 왕국게르만족의 프랑크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중세 초에 서유럽과 중부유럽을 통일에 가깝게 이룩한 나라이자 오늘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는 국가이며,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메로베우스 왕조는 482년 클로비스 1세의 집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카롤루스 마르텔의 집권부터 메로베우스 왕의 권력은 바닥이었기에 공식적 왕조의 소멸은 754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714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메로베우스 왕조의 건국자는 킬데리크 1세이지만, 그가 죽은 후 아들인 클로비스 1세가 통치 기반을 다졌습니다. 클로비스의 프랑크족은 라인 유역에 정착하고 살았는데, 주변에 서로마 제국의 잔존 세력인 수와송 왕국과 부르군트 왕국, 서고트 왕국, 색슨족, 랑고바르드 족이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하고 있었습니다.

 

게르만 족에게 권력이란 전쟁에서의 승리 뿐이었습니다. 클로비스는 몇 차례 원정을 통해 수와송 왕국을 멸망시키고, 솜 지방과 루아르강 유역의 사이로 큰 영토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어 공고트족의 왕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키고, 비잔티움 제국과도 유대관계를 가지는데, 서고트 왕국과 알레만니 왕국을 전쟁으로 굴복시키게 됩니다.

 

■가톨릭 개종

클로비스는 가톨릭교를 받아들여 교황에게 세례와 왕관을 받아 가톨릭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영토를 관리하고 안정시키는 데 힘을 쏟습니다. 이유는 이방인 또는 미개인 취급하며 경멸하는 로마인들과 로마화된 식민지인들이 많아 융합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왕국을 정서적으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어느 성공했습니다. 이를 위해 왕은 자신을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로 자처하고, 가톨릭 귀족 클로틸드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는데, 이는 아리우스파를 고집한 동시대의 부르군트인, 서고트족의 정책과는 대조됩니다.

 

■메로베우스 왕조의 몰락

클로비스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은 자신의 네 아들이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그 중에 막내 아들 테오도베르투스 1세가 재통일을 하지만 네 명의 아들이 다시 나누어 가지게 되고, 클로타리우스 2세와 다고베르투스 1세의 아래 메로베우스 왕조는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다고베르투스 1세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어린 아들들이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역시 왕조는 둘로 나뉘게 되고 내분이 시작됩니다. 결과적으로 아우스트라시아의 권력은 피핀가에 네오스트리아와 부르군트 분국은 바틸드 왕비가 통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재 작위를 두고 가문과 지방간의 내분으로 왕권은 추락하게 되고 승리한 카롤루스 가문이 메로베우스 프랑크 왕국의 군주가 됩니다. 

 

751년 교황을 등에 업은 피핀 3세가 킬데리크 3세를 삭발시키고 수도원에 유폐시킴으로 메로베우스 왕조는 몰락하게 됩니다.

 

■메로베우스 왕조 시기의 카롤루스 마르텔

플렉트루드 왕비는 테오드발트의 어머니로서 섭정을 시작하고, 카롤루스 마르텔을 감금하게 됩니다. 하지만 궁재가 어려 권력이 약해진 틈을 타, 3대 난국이 발생하는데, 716년 카롤루스 마르텔도피했다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717년 네우스트리아 본국 귀족들을 종속시켰으며, 724년에 궁재가 됩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귀족들의 분란을 잠재우고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를 격퇴하면서 군사적 권위를 얻고, 유럽 문명을 이슬람에 대치함으로써 기독교의 수호자로서 자리매김해 종교적, 군사적 권위로 자신의 정통성을 변호하게 됩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공석이 되었던 왕위를 대신하여 메로비우스 왕조를 통치하지만 왕위를 넘보지는 않습니다. 737년 왕이 죽었을 때 그는 왕을 새로 교체하지 않고, 공석으로 두며 스스로 부왕이란 칭호를 부여하게 됩니다.

 

피핀과 카롤루스 대제, 프랑크 왕국의 분열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5세기 말 메로베우스 왕조를 개창한 클로비스는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였습니다. 메로베우스 왕조의 궁재였던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에 승리하게 됩니다.

 

로마 공화정 시기에 12표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상수시 궁전을 건설하였습니다.

 

정통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세력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켰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군사적 봉건제인 티마르제를 실시하였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클로비스 1세와 카롤루스 마르텔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주제에 맞추느라 피핀과 카롤루스 대제에 대해서는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학습코치 부이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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