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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사회탐구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

by 부이쌤91 202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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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습코치 부이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이라는 주제로 고등학교 사회탐구영역 세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2020년 6월 모의고사 18번 문항을 토대로 재구성하였으며, 러시아 혁명 이전의 정세, 2월 혁명과 10월 혁명, 혁명 후의 레닌과 스탈린의 통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시문

18번 문항에서는 밑줄 친 임시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이라고 출제되었습니다. 제시문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이 당시에 있엇던 임시 정부 시기에 대한 내용을 찾으면 되겠습니다.

 

 

노동자, 병사, 농민들이여! 여러분은 이미 혁명을 통해 차르와 귀족의 전제정을 타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부르주아 집단의 전제정인 임시 정부를 타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페트로그라드에 대한 공격을 막아 내고, 내부의 반혁명 세력을 철저히 무장 해제시키고, 혁명 세력을 확고히 조직하여 민중 강령을 확실히 실현하는 것입니다.

 

차르와 귀족의 전제정을 타도한 경험이 있고, 페트로그라드에 대한 공격과 반혁명 세력 등을 통해 임시 정부는 러시아에서 2월 혁명으로 인해 세워진 임시 정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17년 3월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 중심의 혁명이 발생하여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임시 정부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지속적으로 참전하면서 독일과의 전쟁을 계속하였고, 개혁에 실패하면서 10월 혁명으로 타도되었습니다.

 

■혁명 이전

19세기 중엽 이후, 러시아의 자본주의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공업 생산량이 7배 이상 늘어나고, 광물 채굴, 철강, 제조 등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노동자의 수는 200만 명 이상늘었지만 최저 임금도 없고, 노동시간도 제한이 없어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정치조직이 탄생하게 됩니다.

 

 

또한, 부르주아들의 편법들로 인해 공산주의가 관심을 받게되고, 노동자 해방단이 번역한 공산주의 서적들과 출판물들이 러시아에 유입되므로서 간접적인 유대관계를 맺게 되고, 인민주의가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혁명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혁명의 바탕이 잡힐 무렵, 니콜라이 2세가 새로운 차르로 즉위하고 반동정치를 계속 펼치게 됩니다. 1881년의 임시법을 계속 적용, 확대하여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고 교육에도 제한을 가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하고, 1898년에는 사회민주노동당이 창당하게 됩니다.

 

1904년에 발생한 러일전쟁에서는 차리즘의 한계를 보여주었는데,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1905년, 전제정을 타파하고 입헌군주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고 농민과 노동자들도 열악한 경제 상황을 개선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무력으로 제압하게 됩니다. 이러한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차르의 퇴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결국 니콜라이 2세는 군주정을 지키기 위해 10월 선언을 발표하고 국회의 개설, 헌법제정, 투표권 확대를 약속하며, 언론과 출판, 결사, 조합 결성의 자유 인권보장이 선언됩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선거권은 주어지지 않게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하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는 실권을 장악하여 공식적으로 전제군주로서의 자신의 직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론이 좋지 못한 와중에 제정 러시아가 독일 제국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모든 물자와 병력을 총 투입하여 안 좋은 결과로 종결되자 러시아에서 혁명적 정세가 시작하고, 반전감정은 차리즘에 대한 반발로 확대됩니다. 노동운동과 병사들의 탈영, 프레깅 등으로 페트로그라드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혁명이 시작되게 됩니다. 

 

■2월 혁명

1917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비보로크의 방직공업 여성 노동자들과 푸틸로프 공장의 노동자들이 전제타도, 빵을 달라, 전쟁 반대 등의 슬로건을 내걸로 파업을 시작으로 러시아 제국은 무너집니다. 기구의 필요성을 느낀 대중들을 위해 소비에트가 결성하고, 자본가와 지주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두마는 임시위원회를 선출하고 수도의 질서확립을 요청, 니콜라이 2세에게 재위를 양위하고 퇴위할 것을 설득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혈우병을 염려한 니콜라이 2세가 미하일 대공에게 양위할 것이라 선언하는데, 미하일 대공은 사태 파악을 하여 재위 계승을 거부하면서 니콜라이 2세와 그 일가는 폐위됩니다.

 

 

차르가 없어지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민중들이 보기에 근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임시정부는 차르가 연합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인정하고 최후의 승리까지 전쟁을! 이라는 슬로건을 내겁니다. 이어 민중들은 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에서 멀어졌고, 다시 그들만의 군위원회와 노동조합공장위원회, 농민위원회를 만들어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합니다. 여기에 레닌은 볼셰비키 집회에서 4월 테제를 발표합니다.

 

<4월 테제>

1.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 전쟁에 단호히 반대하고 즉각 평화를 실현한다.

2.부르주아에게 권력을 넘긴 1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반농이 권력을 장악하는 2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3.임시정부를 지지하면 안 된다.

4.소비에트의 권력을 확대해야 한다.

5.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을 

6.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국유화 한다.

7.모든 은행은 소비에트의 통제를 받는 국립은행으로 통합한다.

8.생산가 분배는 소비에트가 통제한다.

9.당 대회를 소집하여 강령을 바꾸고 당명은 공산당으로 바꿔야 한다.

10.새로운 국제혁명조직으로 제3인터내셔널을 창설해야 한다.

 

곪을 대로 곪은 임시정부와 민중 간의 갈등은 전쟁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게 되는데, 참다 못한 민중들이 7월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입니다. 그리고 16일 기관총 연대를 선두로 대규모 무장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임시정부가 레프 트로츠키 등을 체포하고, 탄압하는 과정에서 민중들은 임시정부를 더이상 믿지 않게 됩니다.

 

 

7월 시위 이후, 농업문제 등에 관한 노선의 차이로 제2차 연립정부가 설립되었습니다. 신임수상 케렌스키는 혁명과 완전히 관계를 끊은 부르주아만의 길을 가기 시작하면서 민중들은 임시정부를 떠나고 있었고, 볼셰비키는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라는 슬로건을 철회하고 무장봉기를 준비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던 도중 러시아는 연료난과 원료부족으로 공장의 가동이 멈추고 식량난도 극심해져 농민들은 전투적으로 변해 지주를 추방하고 스스로 토지를 재분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볼셰비키 중심의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기를 바라며 10월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10월 혁명

라보르 코르닐로프의 반란 와중 제2차 연립정부는 와해되었습니다. 케렌스키는 총재정부를 구성, 러시아 공화국을 선언하고 두마를 공식 해산하는 등 형식적으로 양보를 하지만 민중운동을 억압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민중의 혁명화는 급속히 진행되었고, 볼셰비키는 두 정당에게 부르주아와의 연대를 끊고 좌파끼리 힘을 합치자고 하였으나 거부당하게 됩니다.

 

케렌츠키는 다시 타협파 사회주의 정당과 제3차 연립정부를 수립하는데, 이에 레닌은 무장봉기를 할 적기라 판단하고 반단패를 억눌렀습니다. 소비에트는 트로츠키의 주도 하에 독일의 위협으로부터 수도와 혁명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여 봉기를 눈 앞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트로츠키는 혁명을 시작하게 되고, 레닌의 지시로 즉각 행동이 개시되었습니다. 그결과 임시정부가 타도되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가 장악하게 되었는데요.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를 새로 선출하고 최초의 소비에트 정부인 인민위원회가 창설되었습니다. 레닌이 인민위원장, 트로츠키는 외무, 스탈린이 민족인민위원직을 맡으며 세계최초의 노동자국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혁명과정에서 천만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의 기반은 취약하였는데, 노동자와 빈농, 병사들의 지지를 받으며 소비에트 정부는 사회의 공산주의적 개조에 착수하게 됩니다. 또한, 인민의 경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도 힘을 쏟고, 임시정부가 예전에 약속한 제헌의회 설립을 예정대로 이행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 결과 볼셰비키는 대도시, 공업 중심지, 군주둔지에서 지지를 얻었고 사회혁명당은 농총지역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됩니다.

 

반혁명 세력도 제헌의회를 통해 설욕전을 준비하는데, 모든 권력을 제헌의회로! 라는 슬로건을 내놓고, 소비에트는 이에 대항하여 의원의 소환권을 도입하고, 제헌의회에 소비에트 권력을 인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제헌의 의회를 둘러싸고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이견이 표출되는데, 레닌은 소비에트가 제헌의회보다 백배 천배 민주적인 제도라며 제헌의회가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알렸습니다.

 

 

레닌은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단독 강화 조약인 브레스트리토포스크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조약은 레닌이 혁명 직후 소비에트 정권을 강화시키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트로츠키, 부하린 등의 반대파를 누르고 조인하였으나 독일 혁명으로 폐기되었습니다. 폴란드, 발트 해 연안, 벨로루시의 할양, 우크라이나의 독립 승인 등 러시아로서 굴욕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토지 분배 및 주요 산업 국유화 등을 추진하는 사회주의 개혁을 실시하였고,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일부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실시하였고, 소비에트 러시아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주변의 소비에트 정부를 흡수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수립하였습니다.

 

레닌이 사망한 후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정리

 

소련의 주도로 1947년에 코민포름이 창설되었습니다.

 

러시아 3월 혁명 이전에 니콜라이 2세가 집권하였습니다. 3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였습니다.

 

니콜라이 2세의 집권 시기인 1905년에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은 급격한 공산화에 따른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1921년 신경제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이라는 주제로 혁명 이전의 시기, 2월 혁명, 10월 혁명, 혁명 이후 레닌의 정책까지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알차고 유익한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학습코치 부이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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