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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 그의 생애

by 부이쌤91 202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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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학습코치 부이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박원순 시장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 그의 생애라는 주제로 짧지만 박원순 시장의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실종이라는 속보가 떴을 때 부터 불안했는데 아침에 확인하니 너무나도 충격이었습니다. 


■청년 시절까지

박원순 시장은 1955년 2월 11일 경남 창년군 장마면 장가리에서 2남 5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는데, 형이 17세가 되던 해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됨으로써 장남이 되었습니다. 

 

1974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시절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제적된 후 단국대에 입학했습니다. 면접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으나, 입학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법원사무관,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검사 생활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박원순은 변호사 출신으로 시민운동을 친착하여 과거 학생운동 시절과 차별화된 선진적인 시민운동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한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박원순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고, 1986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으로 지냈습니다. 2000년 12월에는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여하였고, 조영래 변호사에 의해 일상의 민주주의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아 참여연대를 설립하게 됩니다.

 

박원순은 1995년에서 2002년까지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을 맡아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 낙선 운동을 이끌었고, 재벌들의 비정상적인 영향력 앞에 주주들의 권리가 외면받고 있다는 불만으로 자본주의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소액주주 권리찾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여 1% 나눔 운동, 동아일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공동캠페인, 중앙일보와 따뜻한 세상 만들기, 작가들의 아름다운 인세 1% 기부운동, 해피빈 창립으로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아름다운가게를 설힙하여 한 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재사용 나눔가게, 제3세계 저개발국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문화 운동, 재활용 디자인 사업, 국제구호를 위한 모급사업을 하였습니다.

 

 

2006년 박원순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시민, 시민사회 활동가,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희망제작소를 출범시켰고, 간판문화 개선, 지하철문화 개선, 여성들을 위한 수영장 생리할인제도, ATM 수수료 사전안내 등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정계 입문

박원순은 시민 운동의 대부격인 인물로 개혁성을 갖춘 전문가라는 평가와 함께, 1990년대부터 정치권에서 계속 러브콜을 보냈으나 거부하고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정치참여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 이명박 정부 때에 들어와서 인데, 초반에는 서로 조력해주는 사이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는 언급을 하면서 비판하기 시작하여 대립하게 되고 국정원에서의 고소건도 법원은 박원순의 손을 들어줍니다.

 

 

한편 2010년 12월 8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박원순은 즉각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식아동 0 캠페인은 개시한 지 일주일 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1억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고, 결식제로운동의 연장선상에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제35대 서울시장(재보궐 선거)

전임자였던 오세훈이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와 동시에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안철수는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는데,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여 당시 아름다운 양보라는 화제를 낳았습니다. 이후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과 야권 단일화 경선에 승리하여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2011 하반가 재보궐선거에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7% 차이로 압승하면서 취임하게 되고,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서울시장이 되었고, 매우 오랜만에 비한나라당 계열의 서울 시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취임하자마자 초등학교 5-6학년에 대한 무상급식 지원에 결재하였고,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을 실현하였습니다. 또한, 2013년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사건 당시 지하철 노조 측과 협상을 통해 파업을 철회하고 우면산 터널의 과도한 가격인상을 막아내었습니다. 또, 정보소통광장을 시작하여 모든 시장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공공정보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열린 시정을 만든다던 말을 실현시켰습니다.

 

■제36대 서울시장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게 됩니다. 경쟁자였던 정몽준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와 막내 아들의 망언 등으로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그 결과 25개 지역구 중 22개 지역구에서 앞서 압승으로 당선되게 됩니다.

 

박원순 시장의 주요 공약으로 서울형 공공 어린이집 1,000개소를 확충하고 서울역 고가 공원화, 5대 창조거점, 3대 아시아지식기반허브, MICE복합단지 조성 등이 있으며 직무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당선 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응하는 청사초롱서울을 발표하고, 2015년 11월에 일정 자격을 갖춘 청년 실업자들에게 월 50만 원씩 지급하는 복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청계천 재복원 의지가 강했으며, 서울시의 빚을 7조 원이나 줄이게 됩니다.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경찰에서 물대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도 밸브를 잠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제37대 서울시장

2018년 6월 13일 선거 결과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 시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3선 이전에 이미 헌정사상 최장기 임기를 수행한 서울특별시장이란 기록으로 2017년 11월 17일자로 2214일째를 기록하며, 종전의 최장기 임기를 수행했던 고건의 임기 기록을 깼습니다. 

 

 

이때, 주요 공약으로는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 50% 달성 추진,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성, 6대 융합신산업 단지 육성 및 MICE복합단지 조성, 벤처육성펀드 1조 2000억 조성, 공공지원형 주거복지 사업, 서울형 주거복지 로드맵 추진, 서울페이 확대를 통한 서울형자영업자실질안정망 구축 등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로 적극적으로 일선 관계자들을 지휘하며 분투했으나 재난지원금을 외국인에게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워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7월 9일 돌연 실종되게 됩니다.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

2020년 7월 9일 오전 박원순 시장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출근하지 않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후 청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 흰 셔츠 위에 점퍼를 걸쳐 입고 서울시 브랜드 I-SEOUL-U가 적힌 배낭을 메고 외출하였다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연락이 두절되자 오후 5시경에 박원순 시장 딸의 신고로 실종신고가 접수되었고,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 소식은 모든 정당에서 추모를 하는 가운데 페미니스트 작가 목수정은 왜 자살했는지 이류를 밝혀야 한다며, 공소권없음을 처리하지 말고 제대로 수사해라고 하며, 전 디지털성범죄아웃 대표 하예나는 박원순의 사망 소식에 주변인들과 와인잔을 건배하는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자 멕시코식 추모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지금까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과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배낭에 적힌 서울시 브랜드를 통해 그는 마지막까지 서울시장이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망 소식에도 불구하고 이해안가는 몇 단체들이 존재하는 것에 비통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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